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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의 발자취를 따라서 14 (소아시아 성지순례) 2021-10-13 오후 2:24:00 관리자 2022-0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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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의 발자취를 따라서 14

사진으로 정리하는 소아시아 성지순례 마지막 편 그리스에서 귀국길까지


▲옛 고대 문화와 공존하며 살아가고 있는 그리스인들.
우리 생활 방식과는 너무나 다른 유럽인들이다. 물론 대부분의 고대 유적들이 대리석 돌이나 붉은 벽돌로 이루어졌기에 가능한 일이겠지만, 특별한 유적이 아닌 어지간한 유적들은 그냥 일반 대중들에게 노출이 되어있어 일반 시민들의 삶속에 일부가 되어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살아가고 있다.


▲빌립보 사도 바울의 감옥터로 알려진 곳.
사도행전 16장 22절 이하에 “무리가 일제히 일어나 고발하니 상관들이 옷을 찢어 벗기고 매로 치라 하여 많이 친 후에 옥에 가두고 간수에게 명하여 든든히 지키라 하니 그가 이러한 명령을 받아 그들을 깊은 옥에 가두고 그 발을 차꼬에 든든히 채웠더니 한밤중에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송하매 죄수들이 듣더라 이에 갑자기 큰 지진이 나서 옥터가 움직이고 문이 곧 다 열리며 모든 사람의 매인 것이 다 벗어진지라”라고 기록한 바로 그곳 이라고 한다.


▲루디아 기념교회. 사도행전 16장 14절에 “두아디라 시에 있는 자색 옷감 장사로서 하나님을 섬기는 루디아라 하는 한 여자가 말을 듣고 있을 때 주께서 그 마음을 열어 바울의 말을 따르게 하신지라” 사도행전 16장 40절에 “두 사람이 옥에서 나와 루디아의 집에 들어가서 형제들을 만나보고 위로하고 가니라‘라고 루디아를 소개하고 있다. 여기에서 두 사람이란 바로 사도 바울과 실라를 말한다. 루디아 기념교회는 이곳에서 머지않은 마을 현지 그리스 정교회인들이 루디아를 기념하기 위하여 자체적으로 모금을 하여 세운 기념 교회이다.

▲루디아 기념교회 앞 간지테스 강 루디아 세례터. 아마도 루디아가 이곳 간지테스 강물을 이용하여 당시 염색 작업을 하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루디아기념교회 앞을 가로질러 흐르는 간지테스 강. 사도행전 16장 13절에 “안식일에 우리가 기도할 곳이 있을까 하여 문 밖 강가에 나가 거기 앉아서 모인 여자들에게 말하는데”


▲빌립보에서 돌아가는 길가에 있는 이름 모를 공동묘지. 이곳뿐만 아니라 유럽 각지를 다니다보면 우리나라 풍습과 다르게 대부분 공동묘지가 사람들이 거주하는 마을 가까이에 조성이 되어있다.


▲길가 어귀를 지키고 있는 사자상. 우리나라 사대문 앞에 와 경복궁 앞에 세워진 해태상이 떠오른다. 사도행전 17장 1절을 보면 “그들이 암비볼리와 아볼로니아로 다녀가 데살로니가에 이르니 거기 유대인의 회당이 있는지라” 라며 바울 일행이 빌립보에서 암비볼리와 아볼로니아를 거쳐 데살로니가로 전도를 떠났음을 알 수가 있다. 빌립보에서 암비볼리(성읍의 둘레)는 약 60Km 정도 떨어진 곳으로 차량으로 1시간 정도면 도착한다. 차로 1시간가량 달리다 보면 스트리몬 강에 다리가 나온다. 이 다리를 건너면 바로 암비볼리 사자상이 나온다. 이곳은 BC 480년 크세르크세스가 페르시아를 침공하였을 때 이곳에 다리를 놓고 건넜다. 다리를 건너자마자 사자상이 보인다. 이 사자상은 BC 4세기경에 세워진 것으로 추측을 하고 있다. 그렇기에 바울이 데살로니가로 가는 도중에 이 사자 상 앞을 지났을 것이다.


▲우리국민의 상식과 사고와는 다르게 이곳 유럽 사람들은 공동묘지 주변으로 주택과 아파트들이 아무렇지 않게 들어서 있다.


▲그리스 아테네에 자리한 한인 식당 서울하우스.
그리스 관광을 하면서 몇 차례에 걸쳐 이용한 한식당 서울 하우스 한국 교민이 운영하는 이 식당은 기본적인 식 자재를 한국에서 가져다 사용을 한다고 한다.

▲비잔틴제국의 마지막 황제 콘스탄티노스 11세 파세올로고스 동로마제국의 마지막 황제의 동상이 아테네 진입 부 바닷가에 우뚝 서있다.
1453년 콘스탄티노스 11세는 메호메트 2세의 침략을 맞아 전쟁을 치르며 콘스탄티노플의 장벽 위에서 인생 최후의 순간을 "당신에게 도시를 넘겨줄 권리는 나에게도, 이곳에 사는 그 누구에게도 없소, 우리 모두를 위해서, 상호간의 이해에 따라, 우리 생명을 아끼지 않고 자유 의지에 따라 죽을 것이오." 라며 “활을 쏘고 창을 던져라, 저들에게 로마인들의 후예와 싸우고 있다는 것을 알려라!" 라며 군사들의 사기를 돋우며 최후를 맞이함으로서 실제 그가 황제의 자리에서 통치를 하는 동안 국가나 국민을 위해 기여한 것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현 시대에까지 영웅으로 기억되고 있다.


▲세계적인 철학자중 한사람인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소크라테스의 감옥(Prison of Socrates) 이름은 이렇게 붙여졌고 가이드가 설명은 하지만 실제로 소크라테스가 이곳에 갇혔었다는 증거는 없다고 한다. 건물의 용도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으며 내부에 물을 흐르게 했던 흔적이 있어 고대 목욕탕으로 추정하기도 한다.
소크라테스는 아테네에 살면서 많은 제자들을 교육시켰으며 플라톤도 그 중의 하나이다. 그러나 그의 사상 활동은 아테네 법에 위배된다 하여 사형언도를 받았고 사형되기 전까지 감옥에 감금이 되어있었단다. 당시 아테네에서는 민주주의제도가 쇠퇴하면서, 사회적 황폐가 확대되는 상황이었다. 소크라테스의 사상은 그 당시의 지배계급인 귀족계급을 대변하고 있었는데, 새로운 신흥계급의 출현으로 반민주주의적인 귀족계급이 수세에 몰렸고, 종래의 그리스의 유물론적인 자연철학에 대립하여 그는 너 자신을 알라라는 말을 기초로 하여 영혼에 대해 깊이 있게 생각하면서 삶의 온당한 방법을 아는 것을 지식의 목적이라 하고 이로써 도덕적 행위를 고양시키는 것을 지향하였다.
즉 단순한 지식이 아니라 실천지를 중시하였다. 이러한 참된 지식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을 귀납법에서 찾고, 사람들의 대화에 의한 문답법에서 독단적인 잘못된 지식을 비판하고 제거하면서 일반적인 진리에 도달할 수 있다고 하였다. 이것은 소크라테스의 아이러니라고 불리우는데 그는 이것을, 진리를 찾을 수 있도록 도와준다는 의미에서 산파술이라 칭하였다. 영혼을 주제로 한 그의 학설은 정신주의적이고 관념론적인 것이고 이것은 그의 제자인 플라톤에게 계승되었다. 소크라테스의 저작은 없으나 그의 사상은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작에 나타나고 있다.<네이버 지식백과 참조>





▲소크라테스 감옥 터를 지나 언덕을 따라 오르면 필로파프스 기념비가 나온다. 아크로폴리스 서쪽에 있는 세 개의 언덕 중 가장 높은 언덕이다. 고대 여행가인 파우사니아스(Pausanias)에 따르면 시인인 모우사이오스(Mousaios)가 이곳에서 살고 묻혀 모우사이오스 언덕이라고 불렀으며, 뮤즈가 사는 신성한 언덕으로 여겨져 뮤즈의 언덕이라고도 부른다.
115년에 고대 아르메니아를 다스렸던 율리우스 안티오쿠스 필로파포스(Gaius Julius Antichus Philopappos : 65~115) 왕자가 죽은 후 이곳에 기념비가 세워지면서 후에 필로파포스 언덕이라고 부르게 됐다. 필로파포스는 말년에 아테네로 돌아와 아테네 시민으로 살며 존경을 받던 명망 높은 인물이었으며 언덕 꼭대기에 그를 기리는 12m 높이의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에게 해와 아크로폴리스의 전망이 좋아 많은 여행자들이 찾는 곳이다.


▲세계적 문화유산 1호인 아크로폴리스. 고대 그리스 신화가 있는 곳 아크로폴리스 전경이다.


▲아크로폴리스 내에 있는 오데움 헤로데스 아티쿠스 음악당(원형극장)과 뒤로 아테네 시가지가 보인다.
그리스에는 두 개의 원형 극장이 있으며, 그중 하나인 아크로폴리스 내에 있는 오데움 헤로데스 아티쿠스 음악당이다. 이 오데움 헤로데스 아티쿠스 음악당은 그 크기와 섬세함이 일품이었다. 그 옛날 어떻게 그런 건축을 할 수가 있었을까를 생각하면 소름이 돋을 정도로 웅장하고 규모가 크며 또한 섬세함까지 갖추고 있었다. 물론 복원을 한 흔적은 여기저기에서 많이 찾아 볼 수 가 있지만, 근래에도 이곳에서 세계적인 음악회가 열리곤 한다는 점에서 볼 때 복원을 하지 않을 수는 없었을듯하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성악가들이 이곳에서의 공연을 한 번씩은 거쳤다고 하며 당연히 우리나라의 세계적인 성악가 조수미도 이곳에서 공연을 했단다. 아무튼 관람석은 거의가 개보수가 되어 말끔하게 정리가 되어있었고, 무대 뒤도 정교한 조각의 대리석 건축물이 상당부분 존재하고 있음에 감탄을 하였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이 음악당 정문으로 접근을 하면 더욱 더 웅장한 원형극장을 볼 수가 있다.

▲파르테논 신전으로 오르는 입구 쪽 계단 수많은 인파로 발 디딜 곳도 마땅치가 않을 정도이다.


▲파르테논 신전. 그리스 고전 건축의 가장 대표적인 건축물로 찬미되는 신전은 복원 공사가 한창이라 가까이 접근하는 것을 허락지 않는다.
파르테논 신전은 마라톤 전투(B.C. 490년)에서 그리스가 페르시아에 승리를 거둔 기념으로 여신 아테나를 칭송하기 위해 건립한 고대 그리스의 대표적인 신전 건축물이다. 파르테논이라는 신전의 명칭은 여신 아테나의 무녀들이 살았던 집인 파르테논(처녀의 집이라는 뜻이다)에서 유래했다.



▲후방 측면에서 바라본 파르테논 신전의 모습. 많이 복원이 된 형태이다.


▲파르테논 신전 뒤쪽에 자리한 에렉테온 신전의 모습.


▲파르테논 신전(우측)과 에렉테온 신전. 에렉테온 신전은 아테나 여신이 올리브 나무를 심었던 곳으로 아크로폴리스에서 가장 신성한 장소에 세워졌단다. 그리스 신화에 따르면 아테네를 놓고 경쟁을한 아테네 여신이 올리브 나무를 심고 그 자리에 바다의 신 포세이돈이 삼지창을 내리쳐 우물을 만든 곳에 전설의 왕 에렉토니우스의 이름을 따 에렉티온 신전이라 불렀다.


▲에렉테온 신전의 일부분을 바치고 있는 여신상들. 옛날 학창시절 역사책에서 보던 장면이다.
에렉테온 신전의 유일한 볼거리로 지목되는 이 여신상들은 기둥을 대신하여 주랑을 받치고 있는데 2m가 넘는 높이로 모두 같은 모습인 것 같으나 자세히 보면 가운데 있는 여인상을 기점으로 좌측의 여인상들은 왼쪽 무릎을 우측의 여인상들은 오른쪽 무릎을 구부리고 있으며 자세히 보면 모든 여인상들의 모습에서 조금씩 다름을 알수가 있다. 현재 이 건물의 여인상들은 모두가 모조품이며 4개는 아크로폴리스 박물관에 1개는 대영박물관에 보관중이며, 1개는 파괴가 되었다 한다.

▲아레오바고 언덕. 언덕이라기보다는 아주 커다란 바위 덩어리이다. 사도 바울이 이곳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며 복음을 외쳤던 곳이며, 고대 그리스 시대 법정으로도 활용 되었고, 소크라테스가 철학을 논하던 장소이기도 하다.


▲아크로폴리스에서 내려다본 고대 로만 아고라의 헤파이토스신전, 뒤로 일반 주택들이 보인다.


▲그리스 시내 교통 역시 일반 도로 위로 트레인(경전철)이 함께 달리고 있다.
우리나라 중소 도시에서도 지하철이 아닌 일반 도로 위로 레일을 설치하여 자동차와 트레인이 함께 달리는 교통시설을 갖추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그리스 아테네 근대 올림픽 스타디움.
많은 관광객이 다녀가는 올림픽 스타디움, 이제는 상징물로 자리를 잡은 것 갔다. 왜냐하면 그 규모가 현대 올림픽을 치르기에는 턱 없이 작아 보인다.

▲약2주간의 긴 여정의 소아시아 성지순례를 마치고 아테네 공항을 통하여 귀국길에 오른다.
그리스 아테네 국제공항에서 아랍에미레이트 아브다비 공항까지의 비행은 약 5시간 30여분이 걸린다.


▲아브다비 국제공항 라운지. 가운데 커다란 기둥에서부터 온 천장이 각기 모양이 다른 작은 타일 조각으로 정교하게 모자이크 처리 되어있다.
이곳 아브다비 공항에서 약 3시간 정도를 체류하였다가 비행기를 환승하여 인천행 비행기를 탑승하였다.


▲그리스 아테네 국제공항을 출발하여, 아랍에미레이트의 아브다비 공항에서 약 3시간가량을 체류하여 비행기를 환승, 총 비행시간 약 16시간의 비행을 끝으로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한 일행들이 각자의 수화물을 찾은 뒤, 한자리에 모여 정서영 총회장의 기도를 마지막으로 바울의 전도여행지 소아시아 성지순례의 모든 일정을 무사히 마치고, 아쉬운 인사들을 나눈 후 각자의 사역지와 가정으로 돌아갔다.

사도 바울의 발자취를 따라 전도 여행지 성지 순례 후기를 마치며,
12일 간의 긴 여정이었던 정서영 총회장님과 함께 떠나는 사도 바울의 전도여행지 성지순례를 기도로 계획하고 준비하며, 시시 때때로 도우시고 역사하시는 주님의 선하신 인도하심에 감탄하고 감사하였다.
성지순례라는 큰 틀에서부터 세세한 부분까지 신경을 써 주시고 기도해 주시며, 이끌어주신 정서영 총회장님에게 감사를 드리며, 모든 일정 중 어려움과 곤란함이 있었음에도 적극적으로 응대하고 진두지휘를 해 주신 온리원투어 대표 이성근 장로님에게도 감사를 드린다.

아울러 긴 여정동안 동참하여 함께 울고 웃으며, 끝까지 묵묵히 따라준 동역자 분들, 모두가 행사를 준비하고 실행함에 수고하였다고 건네는 인사말 한마디에 나는 그저 목사님들이 수고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라는 말 외에 답을 할 수가 없었기에... 제11차 소아시아 성지순례에 동참하여 함께 해주신 모든 동역자 들에게 감사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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