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연구(20) - 이권희(총회신학 학술원 교수) 2021-11-24 오전 11:56:00 | 관리자 | 2022-01-27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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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7편은 ‘다윗의 식가욘, 베냐민인 구시의 말에 따라 여호와께 드린 노래’라는 표제가 제시되어 있다. 여기서 ‘식가욘’으로 번역된 히브리어 ‘쉭가욘’은 ‘방황하다’, ‘비틀거리다’ 라는 뜻의 ‘솨가’를 원형으로 하는 단어로서 그 의미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격한 감정으로 쓴 시를 의미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왜냐하면 이 시는 다윗이 원수들에게 쫓기는 상황에서 의로운 재판장이신 하나님께 자신의 무죄를 확신하면서 무고함을 입증해 달라고 간구하는 시이기 때문이다. 더불어 ‘여호와께 드린 노래’로 번역된 ‘솨르 라이흐와’란 표현은 인간으로부터는 어떠한 도움도 받을 수 없는 곤고한 상황에서 오직 여호와를 향한 간곡한 바람이 반영된 표현이기 때문이다. 한편 이런 기도를 드릴 수밖에 없는 원인을 제공한 ‘베냐민인 구시’와 관련되어서는 안타깝게도 성경에는 이 사건에 관한 기록이 없다. 다만 사울이 베냐민 출신이었음을 감안할 때 사울이 다윗을 공격할 때 ‘베냐민인 구시’ 역시 다윗에게 가시 같은 존재였을 것으로 추정될 뿐이다. 한 가지 참고할 사항은 ‘구시’로 번역된 ‘쿠쉬’란 이름이 성경에서 함의 아들과 그 후손들을 가리키는 명칭으로 쓰이거나 그들이 살던 지역을 가리키는데 쓰였다는 것이다(창 2:13 10:7,8 대하 14:11). 따라서 학자들 중 일부는 구시가 출애굽 당시 이스라엘 무리 속에 섞여 나왔던 이방인으로서 가나안 땅 분배 당시 베냐민 지파에 속하게 되었다고 주장한다. 그래서인지는 알 수 없으나 유대인들은 전통적으로 이 시를 부림절(에 3:7 9:26)에 낭송하였다고 한다. 이는 아마도 이방인 하만의 흉계로부터 구원해 주신 부림절 사건과 다윗을 멸절시키려던 이방인 구시의 흉계로부터 지켜주신 사건이 유사하여 유대인들이 전통적으로 부림절에 낭송하였던 것으로 추정된다.이 시는 억울한 일을 당하고 있는 사람이 하나님의 보호를 바라는 보호시(psalm of protection)로서 개인 탄원시의 양식에 속한다. 그래서 개인 탄원시의 일반적 구조와 같은 방식으로 ‘부름 - 기원 - 탄식 - 무죄 변호의 탄원 - 기원 - 신뢰의 확신 표현 - 감사와 찬양의 맹세’의 형식을 취한다. 이른바 개인 탄원시의 전형적인 모습으로 잘 구성되어 있다고 학자들은 평가한다. 이 시의 전반부는 무고를 당한 다윗의 강력한 무죄 변호와 절규와 호소로 이어져 나온다. 여기 나타나는 경건한 자의 무죄 변호는 다른 경우들과는 다르게 자기 저주라는 방식으로 자신을 전적으로 하나님께 복종시키는 형식을 취한다(5절). “만일 내가 저 원수처럼 이런 일을 행하였다면 … 원수로 하여금 나의 영혼을 쫓아 잡아 내 생명을 짓밟게 하고 내 영광을 먼지 속에 살게 하소서”(3-5절)라는 표현은 억울함과 원통함으로 가득한 사람의 고백이다. 그러나 신학적으로 본다면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아신다는 것을 전제로 하여 하나님의 의로우신 판결을 전적으로 수용하겠다는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신앙고백이며 완전한 믿음의 표현인 것이다. 이러한 다윗의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신뢰는 중반부인 6-13절에서 공의로우신 재판장 하나님께서 자신의 억울함을 밝혀 주실 것임을 확신하며 여섯 가지로 하나님의 품성을 찬양함으로 이어진다. 첫째, 여호와께서는 의로우신 하나님이시다(9절). 둘째,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마음과 양심을 감찰하신다(9절). 셋째, 하나님께서는 의인의 방패가 되어 주신다(10절). 넷째, 하나님께서는 정직한 자를 구원하는 분이시다(10절). 다섯째, 하나님은 의로운 재판장이시다(11절). 여섯째, 하나님께서는 악인을 공의로 심판하는 분이시다(11절). 따라서 이어지는 14-16절은 하나님의 품성에 따라 하나님께서는 악인이 세운 계획에 악인 스스로가 빠지게 하여 공의의 심판을 하심을 서술한다. 여기서 다윗은 ‘악은 악인에게서 난다’는 진리를 재차 확인시킨다(삼상 24:13). 즉 하나님께서는 악인들이 판 구덩이에 스스로 빠지게 하심으로서 그들을 심판하신다는 것이다. 다윗은 이 시를 탄식과 절규로 시작했지만 17절의 마지막은 하나님의 의를 감사하며 지존하신 여호와의 이름을 찬양함으로 끝맺는다. ‘감사함이여’, ‘찬양함이로다’는 앞서 언급한 하나님의 여섯 가지 품성으로 인해 악인은 반드시 멸망하고 의인이 승리하리라는 확고한 선취적 신앙을 보여준다. 시편 7편을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전해주시고자 하시는 메시지에 우리는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이 시는 하나님의 공의로우심과 그 공의로우심에 따른 심판을 통해 악인은 필연적으로 멸망당할 것이며, 의인은 구원해 주실 것임을 강조한다. 다윗은 불의하고 어려운 현실적 상황에서 기도하였다. 그 기도는 인간의 구원과 멸망에 관한 최종 결정권을 지니고 재판하시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의를 행하고자 몸부림쳤던 자신의 삶을 인정해 주실 것이란 확신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우러나올 수 있었던 기도이다. 다윗은 오로지 여호와 하나님을 신뢰하고 간구함으로 자신의 문제가 해결 될 것임을 확신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악인을 멸하시고 의인을 구원해 주시는 분이심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 성도들 역시 다윗이 경험했던 것과 같은 억울함과 원통함들 속에서 고통당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 억울함의 원인이 자신의 잘못이나 실수 혹은 자신의 불의함으로 인한 것이라면 문제가 다르겠지만, 온전히 자신을 오해하고 시기하고 모함하는 사람들의 공격에 의해 발생되는 사건들이라면 다윗이 처했던 억울함과 다를 바 없다. 이 시는 그런 원통한 일들로 인해 낙심한 성도들이 그 위기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를 시사한다. 시편 7편은 하나님께서는 의로우신 재판장이시며, 의로운 하나님의 백성이 극도의 암담한 현실 가운데 처해 있다 할지라도 결국은 하나님께서 공의로운 심판을 통해 억울함을 풀어주시고 반드시 승리하게 해 주심을 보여준다. 따라서 이는 오늘을 살아가는 성도들이 겪는 억울함을 하나님께서 반드시 공의로 판단하시고 풀어주실 것임을 확인시켜 준 것이다. 궁극적으로 이 시는 의로운 하나님의 백성은 반드시 승리하며 악인들은 필연적인 파멸과 심판을 받게 됨을 강조한다. 때문에 오늘날의 성도들도 다윗과 같이 이 사실을 확실히 믿는다면, 억울하고 원통한 상황 속에서도 결코 절망할 필요가 없다. 다윗과 같은 선취적 신앙을 가지고, 의와 불의를 분명하게 판단하시는 하나님 안에서 얻게 될 승리를 확신하며, 소리 높여 하나님을 찬양함이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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